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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을 시작하자.

  • 윤동
  • 2018년 1월 13일
  • 2분 분량

오래간만에 부모님 집에 갔다. 별 시덥잖은 종교 이야기에 심취해 계신 부모님과의 대화는 늘 재미없고 무료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뭔가 생산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건 꼭 생산적인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 먹고 하신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긴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 말은 다름 아니라, 내가 어려서 뭔가 일을 하기 전에 결코 납득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저 시어머니로서 문득 떠오른 아들에 관한 사실을 내 아내에게 말한 것 뿐이었다. 사실 굉장히 별 말이 아닐 수도 있는 말이지만, 내 귀에 왜 그 말이 그렇게 중요하게 들렸을까.

사실 나는 내 자신의 유년기를 어디엔가 소개할 때, '착한 아이'로 소개했었다. 착한 아이, 곧 별 거리낌이 없이 수더분한 아이, 낯을 가리지도 않고, 된장이니 똥 먹으라고 하면 그냥 먹을 아이, 그런 정도로 생각했다. 특히 다름 아닌 어머니가 나에게 오랫동안 강조(강요)했던 성품이 곧 '순종'이기도 했었기에 나는 어릴 때부터 별나지 않고 모나지 않은 어린 시절을 가졌다고 믿었다.

내가 지금에 와서 이렇게 누군가를 향해 날선 비판과 비평을 날리는 사람이 된 것은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서울로 와서 혼자 살기 시작한 20대 초반쯤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왔다. 그 때부터 난생 처음 부모로부터 벗어나 술도 먹기 시작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았던, 그래서 내가 스스로 수더분하지 않고 나와 세상에 칼을 들었던 '거듭남'의 시간이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나보다. 내가 지금 서른 하고도 다섯이 된 이 순간에. 20대 초반에 만났던 사람들이 다 어디론가 자기의 살 길을 찾아가고, 그에 맞게 자기를 변형시키 나가는 이 순간에도 그 때의 기억들이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내 안에 불덩이가 강해진 것을 느끼는 요즘, 이런 내 모습과 지향이 20대 초반에 '학습'된 것이 아니라 뭔가 '생득적'으로 날 때부터 내 몸에 붙어 나온 건 아닐까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그렇게까지 점진적인 진보가 이루어지는 곳은 아닌 것 같다.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뭔가 중에 내 롤모델은 없다. 내 눈에 포착되는 목표지점이 없다. 내 손을 뻗어 짚어낼 다음 포스트가 없다. 나는 단절되었다. 세상에 홀로인듯 한 느낌이다. 이제야 생산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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