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 송기
- 2018년 1월 8일
- 2분 분량

살인사건 제 9호.
미제 키보드 살인사건
평소 잘 알려진 대학 선후배 사이였던 김과 연은 사건 당일에도 특별하다 할 일이 없이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신 후에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사건은 연과 김이 함께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김이 다른 카톡방에 올려야 할 연에 대한 사소한 내용을 잘못 올렸던 것이 발단이 되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은 평소에도 연이 이야기를 할때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연의 앞에서 그의 버릇을 알고 있다는 것을 내색한 적이 없었다. 연이 버릇처럼 콧구멍을 벌름거릴 때는 주로 정치나 인권, 세계정세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인데, 연이 한번도 누구에게 말한 적 없지만 스스로도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으려 하다보니 생겨난 버릇이기도 하고 유명 정치인 존 카메론의 연설영상을 보고 흉내내려다 생겨난 버릇이기도 했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이야기할 수록 스스로 엄청난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 뒤로는 저절로 콧구멍이 벌름거려졌던 것이다.
콧구멍은 좌우 번갈아가면서 두번씩 벌어지는데, 그 모습을 처음 본 사람은 벌름거리는 콧구멍을 따라 눈동자를 좌우로 같이 굴려대기 바쁘게 될 정도로 꽤 큰 움직임을 보인다. 하지만 연이 이야기를 하려할 때 유난히 목소리와 몸동작이 큰 탓에 그를 오래 만난 사람들 말고는 연의 버릇을 한눈에 알아보기란 어렵다.
김은 다른 친구들의 카톡방, 특별히 연이 좋아하던 신이 함께 있는 동기 모임 카톡방에다가 연의 그 콧구멍에 대한 움직임에 관한 조롱섞인 말을 남겼다. 아마도 평소에 연에 관한 조롱을 나누던 다른 친구들 간의 카톡방에 남긴다는 것을 헷갈렸던 모양이다.
김은 연이 함께 있는 카톡방에 “오늘도 연의 완두콩이 굴러 다녔어” 라는 말을 남겼고, 연이 좋아하던 신이 “완두콩이 뭐야?ㅋㅋ” 라고 바로 메시지를 남기고 뒤를 이러 곽이 “헉..” 이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 뒤로 김이 ‘연의 완두콩’에 대해 지루한 변명을 늘어놓고, 그 별명을 아는 친구들의 어색한 맞장구가 쳐짐으로 ‘완두콩’ 에 관한 대화는 마무리 되었다. 그 자체로 본다면 그날 카톡방의 대화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판단될 수 있었다.
사건 당일 연은 알리지 않은 채 김의 집 앞으로 찾아갔다. 평소 막역한 사이였던 탓에 연은 김의 집 현관이 잠겨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연은 그 길로 조용히 들어가 헤드셋을 끼고 컴퓨터 게임을 하던 김을 향해 소리쳤고 그래도 김이 응답하지 않자 게임중인 김의 키보드를 주먹으로 몇번 내리쳤다. 김은 자신의 게임이 망쳐진 것에 대해 심한 분노감을 표출했으며 몇 분간의 말다툼 후 연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다음날 사체로 발견된 김에 대해 연이 어떠한 관계도 없음을 증명하기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 무단으로 김의 집에 침입했다는 진술과, 아주 사소하지만 김의 실수가 연에게 어떠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라는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부검결과 김의 신체에서 폭행이 가해진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었으며 사망원인은 타살이 아니라 돌연사로 판명되었다. 평소 앓던 병도 없던 건강한 남성이 그렇게 하루 아침에 사망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몇 번의 사소한 조사와,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 신문의 한 귀퉁이에 기사가 났을 뿐이고 어떠한 추가적인 의혹이 제기되거나 연관된 다른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았다.